온달장군 삼국사기 속 과 평강 공주의 사랑 이야기!(평원왕)

kbs 공식 홈페이지 배움의 어느 날마다 드라마로 읽는 역사

<달이 뜨는 강> 삼국사기 속 온달과 평강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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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따뜻해졌네요. 다음주부터 벌써 3월이고, 벌써 봄이 오는 것 같네요. 겨울이 아무리 춥다고해도 눈은 녹고, 봄은 오니까 자연은 정말 신비롭답니다!
^-^

이번 포스팅은 KBS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극입니다!
<달이 뜨는 강>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평강공주 역을 맡은 김소현 씨, 이제 정말 여성스러우시잖아요. 녹두전 때만 해도 소녀였던 것 같아요.지금은 정말 숙녀 느낌이 너무 예쁘네요.

그럼 이번 포스팅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온달설화>를 통해 <달이 뜨는 강>의 역사적 시대배경을 알아볼까요? 드라마 자체도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포스팅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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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속의 온달

삼국사기 45 열전 5에는 온달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온달은 고구려의 평강왕(기록물은 평강왕 또는 평원왕이라고도 합니다)때의 사람으로 얼굴은 못생겼지만 마음씨는 상냥했다고 합니다.

가난해서 구걸을 하며 어머니를 봉양했고, 남루한 행색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평강공주는 어려서부터 자주 울었는데 왕은 공주에게 당신이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공주는 어른이 되어도 괜찮은 아내가 되지 못하고, 바보 온달에게라도 시집을 보내자고 이야기합니다.

왕은 늘 공주에게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공주가 16세가 되면 그녀를 귀족 가문의 맏아들인 고씨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평강공주는 아버지는 항상 나를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고 필부들도 식언을 하지 않는데 왕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없다며 왕명을 거절합니다.

화가 난 왕은 “너는 내 명을 따르지 않으므로 내 딸이 될 수 없다”며 평강공주를 쫓아냈어요.

kbs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평강공주는 보물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차고 궁궐을 나와 온달의 집을 찾습니다.

그런데 눈이 먼 온달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가난하고 못생겨서 공주 같은 귀인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합니다.

온달 역시 공주와 처음 만나자 공주의 청혼을 거절하고 우물쭈물하며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평강 공주는 마음만 맞으면 다른 건 문제없다며 온달을 설득해 자신이 가져온 금팔찌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처음말을살때공주는온달에게시장사람들이사는말은사지않고반드시나라말을고르는데,병이나서파리에서파는것을사오라고부탁했어요. 온달은 그녀의 말대로 하고 공주가 말을 자세히 보면 말은 날마다 살이 찌고 건강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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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서는 늘 봄인 3월 3일 낙랑의 언덕에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그날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을 모셨습니다.

그날이 되면 왕과 함께 신하와 다섯 명의 군사들이 수행하는데 온달도 기른 말을 타고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온달이 달리는 폼이 훨씬 빨랐고 사냥에서도 실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어요. 왕도 온달의 그런 모습에 놀라워하죠.이때 후주 무제가 군사를 보내 소란을 일으키자 왕이 군사를 이끌고 이 산야에서 맞서 싸웠습니다.

이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승기를 잡아 적을 무찌르자, 이후의 전공을 논할 때 온달을 제일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온달을 자랑스러워하며 “이 사람이 내 사위야.”라고 공표하여 대형 작위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온달은 영양왕 즉위 후 신라가 차지가 한강 이북의 땅을 탈환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가 아단성(현 아차산)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됩니다그런데 온달의 장례를 치르고자 상여가 움직이지 않자 공주가 와서 관을 만지며 “죽어서 살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아, 돌아갑시다.

”라고 울면서 말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관이 움직여 온달장군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달설화가 마지막이 슬프네요 ㅠㅠ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
!

kbs 공식 홈페이지 온달설화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평강공주의 내조 부분이죠. 평강공주가 가져온 팔찌를 통해 살림을 차리고, 좋은 말을 골라 살핀 달장군이 사냥과 전쟁에서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남편을 돕는 평강공주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어요.

온달설화에서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은 일종의 자유연애를 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만약 온달이 정말로 최하층의 빈민이었다면 고대 신분제 사회에서는 평강과 온달이 혼인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왕권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공주가 하급귀족과 결혼하면서 온달설화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온달이 순노부족장 온협의 아들로 묘사되어서 단순한 바보가 아니라 서사있는 인물로 묘사되죠?특히 평강공주의 아버지인 평원왕(평강왕)은 양원왕의 아들이었는데, 6세기 양원왕 시기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국내 성계의 귀족들과 신진 귀족들의 대립으로 대규모 내분이 일어났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제동맹군은 한강유역을 공략하면서 북제와 돌궐이 고구려를 압박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왕권은 귀족들을 타협시켜야 할 필요성이 높았던 것입니다.

온달설화는 공주가 가진 보물인 팔찌를 팔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당시 고구려에 상공업이 발달하고 경제에 사적 소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함께 새로운 부민층이 탄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죠. 왕권은 관료체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신세력과 결합지배층을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특히 사냥과 전쟁을 통해 관료체제 안에 새로운 세력을 포섭하려고 노력했는데, 온달 장군 역시 이 과정을 거쳐 지배층으로 포섭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바보 온달장군은 거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하층귀족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귀족세력을 통제할 수 없었던 왕권(평강왕/평원왕)은 평강공주를 통해 신진세력과 손을 잡고 권력의 균형을 잡으려고 시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온달 장군은 단순한 바보온달이 아니었던 셈이죠.오늘은 <달이 뜨는 강>의 역사적 이야기를 알아보았는데 재미있으셨나요? 포스팅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옆집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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